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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김연아, 은퇴할 수 있기를 바란다 - 다음게시판(청입니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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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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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을 시작으로 한다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과거의 기록은 포함시키지 않는 이유는, 예전에는 선수간의 실력차이가 너무 커서, 타이틀을 오랫동안 독식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노르웨이 출신의 소냐 헤니라는 여자 스케이터는 1927~1936년에 걸친 10년동안 세계선수권을 10연속으로 우승했다. 이런 선수를 현대의 선수들과 비교하면 양쪽에 모두 불공평하다.)

 

 

 

1984. 사라예보. 남자, 스캇 해밀턴.                     여자, 카타리나 비트.

1988. 캘커리. 남자, 브라이언 보이타노.              여자, 카타리나 비트.

1992. 알베르빌. 남자, 빅토르 페트렌코.              여자, 크리스티 야마구치.

1994, 릴레함메르. 남자. 알렉세이 우르마노프.    여자, 옥사나 바이울.

1998, 나가노. 남자. 일리야 쿨릭.                       여자, 타라 리핀스키.

2002, 솔트레이크. 남자. 알렉세이 야구딘,          여자, 사라 휴즈.

2006, 토리노. 남자. 예브게니 플루셴코,              여자, 아라카와 시즈카.

 

 

 

월드는 너무 많아서 정리하기 힘들고, 그랑프리 파이널만 정리해 놓겠다.

 

 

1995 미셸 콴(미국)                   알렉세이 우르마노프(러시아)

1996 타라 리핀스키(미국)             엘비스 스토이코(캐나다)

1997 타라 리핀스키(미국)             일리야 쿨릭(러시아)

1998 타티아나 말리니나(우즈벡)       알렉세이 야구딘(러시아)

1999 이리나 슬루츠카야(러시아)       예브게니 플루셴코(러시아)

2000 이리나 슬루츠카야(러시아)       예브게니 플루셴코(러시아)

2001 이리나 슬루츠카야(러시아)       알렉세이 야구딘(러시아)

2002 샤샤 코헨(미국)                 예브게니 플루셴코(러시아)

2003 수구리 후미에(일본)             엠마뉴엘 산두(캐나다)

2004 이리나 슬루츠카야(러시아)       예브게니 플루셴코(러시아)

2005 아사다 마오(일본)               스테판 랑비엘(스위스)

2006 김연아(한국)                    브라이언 쥬베르(프랑스)

2007 김연아(한국)                    스테판 랑비엘(스위스)

2008 아사다 마오(일본)                      제레미 애봇(미국)

 

 

 

 

 

참...... 이름만 나열해도 정말 주옥같은 선수들이다.

 

먼저 남싱부터 가볍게 소개를 하자.

 

스캇 해밀턴은 뭐, nbc에서 승냥승냥거리며 해설하는 대머리 아저씨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김연아 선수한테 너무 호의적이라서 무슨 마음씨좋은 아저씨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원래 딕 버튼 못지않은 독기어린 혓바닥을 자랑하는 사람이다.

 

딕 버튼 할배가 잘하는 놈은 까고, 못하는 놈은 개무시하는 스타일이라면,

 

해밀턴은 까야 할 놈을 시원하게 밟아주는 스타일이다.

 

현역시절 커리어도 뻐렁치게 훌륭해서, 4년 연속으로 세계선수권을 석권했으며,

 

1984년에는 올림픽-월드를 동시에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오서는 해밀턴의 경력 후반기부터 함께 컴페티션계에 있었는데, 해밀턴의 포스가 너무 강해서 이 기간동안 월드챔피언에 한번도 오르지 못했다. 

 

해밀턴의 은퇴 이후, 드디어 오서의 시대가 오는 듯 했지만, 이후 브라이언 보이타노가 대를 이어 데뷔하며,

 

오서는 미국의 천재들에 밀려 월드 준우승만 4번, 우승은 고작 1번이라는 캐안습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1988년 금메달리스트 브라이언 보이타노는 오서와의 BOB로 잘 알려진 선수이다.

 

한쪽 손을 살짝 들어올리면서 뛰는 타노 럿츠는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명품연기이며,

 

매혹적인 외모 덕분에 팬들도 많았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완벽했다. 특히 스프레드 이글을 할 때는 남성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유연성을 보여줬는데,

 

지금도 당시 영상을 보면 45도 정도 몸을 기울인 채로 물 흐르듯이 구사하는 스케이팅 스킬에 눈이 돌아갈 정도다.

 

은퇴 이후에는 카타리나 비트와 같은 단체에서 활발하게 아이스쇼 활동을 했는데, 워낙 왕자같고, 공주같았던 두 사람이라, 젊은 시절의 영상들을 보면 아름답기 그지없다.

 

물론 요즘은 좀 많이 쳐늙으셔서 예전의 광채어린 미모는 온데간데 없다. 보이타노, 커트 브라우닝, 스캇 해밀턴에 비하면 브라이언 오서는 진짜 잘 늙었다.

 

 

 

 

한편, 1992년 금메달리스트인 빅토르 페트렌코는 은반위의 아티스트라고 불렸으며,

 

80~90년대 은반을 지배한 선수였다. 커트 브라우닝이라는 또다른 전설에 밀려서 명성에 비해 월드와는 그닥 인연이 없었다.(우승 1회, 준우승 2회.)

 

1992년은 페트렌코 커리어의 정점이었으며, 이 해에 페트렌코는 월드와 올림픽을 동시석권하며, 커트 브라우닝을 두번 죽였다.

 

(커트 브라우닝은 컴페티션에 있던 5년동안 월드만 4번을 쓸었던 당대 최고의 선수였다. 그 기간동안 월드에서 브라우닝을 한번이라도 이긴 선수는 페트렌코가 유일하다. 참고로 커트 이 양반도 요새 CBC에서 승냥질하느라 정신이 없다.ㅋㅋ)

 

은퇴 이후에는 아이스쇼를 하며, 같은 나라 출신의 소녀 옥사나 바이울을 후원했던 훈훈한 미담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1994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알렉세이 우르마노프는 구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배출한 최초의 금메달리스트이다.

(페트렌코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라서 소련에 포함시킬 수도 있을 텐데, 왠지 모르게 계보에서 빠졌다.)

 

커트 브라우닝이 남싱계의 콴이라면, 우르마노프는 남싱계의 사라 휴즈라고 볼 수 있겠다.

 

뭐, 원래도 러시아 남싱 특유의 왕자같은 외모에, 월드에서 2~3위 정도 성적은 찍을 수 있는 뛰어난 실력까지 갖춘 선수였지만,

 

솔직히 멘탈적으로 불안정한 선수였기 때문에, 그가 올림픽 금메달을 딸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무난한 연기로 금메달 획득.

 

게다가 이듬해에는 그랑프리 파이널 1회대회 우승까지 차지하며 커리어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이후 '월드도 한번 석권해 보자' 라는 미련이 남았었는지 계속 컴페티션계에서 활동하지만, 포디움에도 오르지 못했다.

 

당대 최고의 포스를 발산하던 선수는 커트 브라우닝의 뒤를 이어 데뷔한 팀 캐나다의 대표주자이자, 가공할 의상센스로 유명했던 엘비스 스토이코였지만,

 

(요즘도 웬만한 남싱은 꿈도 못 꾸는 4-3을 가볍게 뛰던 선수였다. 월드 3회, 그랑프리 파이널 1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김연아 선수도 이 선수의 동영상을 보며 오서 밑에서 수련을 했다.)

 

'팀 캐나다'의 비극적인 숙명 탓인지, 스토이코 또한 선배인 브라이언 오서와 커트 브라우닝처럼 올림픽 금메달의 한을 풀지 못하고 만다.

 

 

 

1998년 금메달은 타라소바 사단의 일리야 쿨릭에게 돌아갔다.

 

은반위의 시인이라 불리던 쿨릭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닮은 미소년틱한 외모와,

 

서정적인 스케이팅으로 큰 인기를 모았으며, 팀 러시아의 대표주자로 각광받았다.

 

원래는 엘비스 스토이코나 토드 엘드리지보다 한끗발 떨어지는 선수로 낙인찍혀 있었지만,

 

올림픽 직전에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당당하게 우승하고, 그 여세를 몰아 올림픽까지 석권한 뒤,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기도 전에 전격 은퇴를 선언해 팬들을 충격에 빠트린다.

 

딱히 부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경쟁을 중요시하는 컴페티션계의 풍토가 싫었기 때문이라 한다.

 

물론 이후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한 야구딘과 플루셴코의 경력을 생각해 보면,

 

박수칠 때 떠났던 당시의 선택이 본인으로서는 더 나은 선택이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후 페어계의 전설이었던 GG의 카티야와 결혼해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2002년의 금메달은 알렉세이 야구딘에게 돌아갔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을 할 수 있을까. 그는 구채점제의 모든 것을 보여준 완성형 스케이터였다.

 

야구딘은 90년대 중반에 데뷔한 선수다. 그랑프리 시리즈에서도 2회대회인 96년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플루셴코는 3회부터 출전)

 

알렉세이 미쉰에게 기본기를 닦은 후, 플루셴코를 편애하는 미쉰에게 분노하여, '하늘아래 두 천재는 없다'며 타라소바에게로 가버린다.

 

이후, 러시아 연맹의 고위직에 있던 미쉰의 미움을 받아 내셔널에서는 한번도 우승하지 못하지만,

 

월드우승 4회, 그랑프리 파이널 2회 우승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남겼으며,

 

혁명 에튀드, 글라디에이터, 윈터, 철가면, 레이싱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명작들을 남겼다.

 

2002년 SP와 LP는 올림픽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로 손꼽히고 있으며,

 

캐나다에서 거행한 은퇴식에서 마지막에 남긴 연설은 팬들에게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선사했다.

 

 

 

 

2006년 금메달리스트인 플루셴코는 또 어떤가.

 

야구딘이 엄청난 높이와 비거리를 자랑하는 황제다운 점프를 했다면,

 

플루셴코는 빠른 회전속도를 이용한 밀도있는 점프를 구사했다.

 

역사상 최초로 쿼드 토-트리플 토-트리플 룹을 착빙했으며, 당대 남자 스케이터 중 유일하게 비엘만 스핀을 구사할 수 있었다.

 

동시대에 야구딘에 필적할 수 있었던 유일한 스케이터였다. 두 사람은 다른 스케이터와는 차원이 달라서, 다른 선수들이 기어다닐 때, 두 사람은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수준이었다.

 

2002년에 쇼트에서 박살이 나면서 야구딘에게 금메달과 스포트라이트를 모두 넘겨주었지만,

 

야구딘이 2003년 부상으로 은퇴한 뒤부터는 거의 혼자서 피겨판을 쓸고 다녔다. 그가 제대로 출전한 대회에서 그와 맞먹을 수 있었던 선수는 단 한명도 없었고,

 

10년 가까이 현역에 있으면서 월드 3회, 그랑프리 파이널 4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비슷한 기록을 쌓은 이리나 슬루츠카야와는 절친한 친구사이라고 한다. 웃긴 게, 야구딘과 플루셴코는 사이가 별로 안 좋고, 슬루츠카야와 부트르스카야도 사이가 엄청나게 나쁜데, 야구딘과 부트르스카야가 친하고, 플루셴코와 이리나가 친하다는 것이다. 아...... 인간이란 알 수 없는 동물.)

 

2006년 올림픽에서는 스테판 랑비엘이라는 강력한 도전자를 맞아, 부상으로 골골대면서도 쇼트에서 신채점제 최고점수를 세우며,(이후 다카하시 다이스케에 의해 깨짐)

 

압도적으로 우승한다. 이후 플루셴코의 은퇴와 함께, 쿨릭 이래 10년간 이어졌던 러시아의 천하는 끝이 났고,

 

차기 금메달리스트로 주목받던 제프리 버틀과 스테판 랑비엘이 동시은퇴하면서,

 

북미-아시아-유럽이 박터지게 싸우는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그렇다면 여싱은 어떨까?

 

물론 시작은  카타리나 비트다.

 

1984년 압도적인 기량으로 월드와 올림픽을 석권한 뒤,

 

계속 컴페티션계에 남아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미국의 데비 토마스와 라이벌이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카타리나 비트가 토마스를 포디움에서든, 은반에서든 압도했다.

 

비트는 1984년 이후 열린 4번의 월드에서 무려 금메달 3개를 더 쓸어담으며, 월드 4회 우승,

 

그리고 여세를 몰아 출전한 1988년 캘거리 올림픽에서는 트리플 악셀을 앞세운 이토 미도리를 카르멘 한방으로 잠재우며, 올림픽 2연패라는 전설적인 성적을 낸다.

 

이후에도 컴페티션계를 떠나지 않고, 유럽선수권 9연패라는 또다른 불멸의 기록을 세운 뒤,

 

잠시 은퇴했다가 1994년에 로빈훗을 들고 또다시 올림픽에 출전해 피겨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대가의 자세가 무엇인지 후배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동구권이 배출한 최고의 미녀로 손꼽히고 있으며, 2007년에 아이스쇼에서 은퇴하여 완전히 은반을 떠났다.

 

올림픽 금메달과 월드타이틀을 모두 획득한 뒤에도 아마추어계를 떠나지 않고 다음 올림픽까지 출전한 선수는 근 30년간 카타리나 비트가 유일하다.

 

 

 

1992년 알베르빌에서는 일본계  미국인 크리스티 야마구치가 금메달을 수상했다.

 

야마구치는 당시 비슷한 연배였던 낸시 캐리건, 토냐 하딩에 반발짝 앞서는 행보로, 월드를 2연패했으며,

 

같은 해에 열린 올림픽에서도 여유롭게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올림픽 금메달 획득 이후에는 다소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인 예전의 챔피언들과는 달리,

 

전성기의 몸매와 실력을 그대로 유지하며 활발한 아이스쇼 및 사회자선활동에 참가하며,

 

'가장 금메달리스트 다운 금메달리스트'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은 야마구치가 일본계라는 것을 알고 대대적인 언론플레이를 시작하려 했지만

 

야마구치가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고 딱잘라 말하는 바람에 몹시 뻘쭘해지고 말았다.

 

 

 

 

1994년 올림픽에서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고아소녀 옥사나 바이울이 '백조'를 들고 나와 금메달을 획득했다.

 

바이울 스핀이라고도 불리는 도넛스핀을 앞세워 대단한 예술성을 과시했으며,

 

단 4개의 아마추어대회에 출전해 그 중 가장 큰 대회인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서 우승하고 명예롭게 은퇴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사실 1994년 대회에서 옥사나 바이울은 기술적인 면에서 낸시 캐리건에게 뒤졌지만,

 

'백조'라는 프로그램의 뛰어난 예술성과, 고아라는 불우한 처지를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에 대한 연민과 감동이 심판들의 마음을 움직여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돈을 벌기 위해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다가, 또다시 오뚝이처럼 역경을 극복하고, 최근에는 아이스쇼 활동 및 피겨의상 제작에 힘쓰고 있다.

 

 

 

1998년 우승자는 타라 리핀스키였다.

 

사실 리핀스키는 떡잎부터 남다른 선수였는데, 내셔널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회에서 또다른 '앙팡 테러블'이었던 미셸 콴을 커리어 내내 앞섰다.

 

콴의 커리어 후반기에 박터지게 경쟁을 벌이는 이리나 슬루츠카야가 선배였던 마리아 부트르스카야에게 가려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하던 시절에,

 

리핀스키와 콴은 세계선수권에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그리고 올림픽에서 끊임없이 경쟁을 벌였다.

 

그리고 리핀스키는 미셸 콴이라는 걸출한 라이벌을 앞에 두고도, 3년 남짓한 짧은 현역생활 동안 월드 1회, 그랑프리 파이널 2회,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남겼다.

 

(그래서 콴은 자신의 앞길을 사사건건 가로막은 리핀스키와 사이가 안 좋다고 한다. 같은 이유로 사샤  코헨도 미셸 콴을 별로 안좋아한다.)

 

그녀의 발랄한 스케이팅은 팬들에게 인기도 좋았고, 특히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의 성공률은 대단히 뛰어났다.(요즘 기준으로는 회전수 부족이다.)

 

 백인이었고, 금전지원이 빵빵한 미국 출신이었던지라,

 

카타리나 비트 못지않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몸을 혹사한 나머지, 야구딘처럼 고관절이 작살나는 비운을 겪고, 아이스쇼조차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이후 배우로 전향했지만, 원래 얼굴이 그렇게 예쁜 선수는 아니었던지라, 활동은 영 지지부진하다.

 

 

 

 

2002년 우승자는 사라 휴즈였다.

 

올림픽을 제외하면 별다른 대표작 하나 남기지 못했고, 미국 내에서의 입지도 영 시원치 않았던 그녀는

 

쇼트를 4위로 마친 뒤, 프리에서 평생 딱 한번 보여줄까말까한 클린 경기를 선보이며 엄청난 점수를 퍼받는다.(요즘 기준으로는 폭풍 다운그레이드. 하지만 구채점제니까 상관없음.)

 

당시 '링크에 돌을 던지지 않는 한 우승은 확정이다'는 평가를 들었던 미셸 콴은 예상치 못한 경쟁자의 등장에 급격히 무너지며 프리를 말아먹었고,

 

또다른 경쟁자였던 슬루츠카야는 사라 휴즈와 같은 점수로 경기를 마쳤지만,

 

'프리스케이팅 점수에 가산점을 준다'는 석연찮은 규정으로 인해 금메달을 휴즈에게 내주어야만 했다.

 

휴즈는 이후 아마추어에서 계속 활동을 한다고 공언했지만, 곧 자신이 별다른 성적을 낼 수 없음을 깨닫고, 프로로 전향한다.

 

(올림픽 프리스케이팅이 끝난 다음날, 슬루츠카야는 너무 울어서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갈라쇼를 했다. 이후 2년간, 슬루츠카야는 부상과 어머니의 병간호로 시련의 나날을 보내며, 매일매일을 눈물로 보내며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자국에서조차 한물 갔다는 평가를 받던 2004~2005년에 그랑프리 파이널과 월드를 모두 석권하며 화려하게 부활한다. 하지만 아사다 마오가 데뷔와 동시에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자신을 2위로 밀어내자, 세월의 무게를 깨닫고, 올림픽을 끝으로 조용히 은퇴한다. 이것으로 남싱에 비해 보잘것없었던 러시아 여싱의 마지막 여왕이었던 슬루츠카야는 그 화려한 커리어의 막을 내린다.)

 

 

 

 

 

최악이었던 2002년의 시련을 딛고, 2006년에는 또다른 인간승리의 대명사인 아라카와 시즈카가,

 

당시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하나도 못 따고 있던 일본에 극적인 금메달을 안겨준다.

 

2004년 월드에서 사샤 코헨과 미셸 콴을 밀어내며 최고의 퍼포먼스로 우승했던 시즈카는,

 

이후 신예들의 등장과 급격한 노쇠화라는 이중고 속에서 고생하다가,

 

약점이었던 유연성과 표현력을 대폭 강화해서 부활을 시도한다.

 

나이제한에 걸린 아사다 마오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땜빵으로 출전한 시즈카는,

 

쇼트에서 'Dark Eyes'로 역사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 사샤 코헨,

 

그리고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이리나 슬루츠카야를 모두 밀어내며 2004년 월드 때와 같은 프로그램인 '투란도트'로 감동의 우승을 한다.

 

 

 

 

 

 

금메달은 실로 하늘이 내리는 것이다.

 

둘이 합쳐서 월드 7회, 그랑프리 파이널 5회를 쓸어가며 여자 싱글을 양분했던 이리나 슬루츠카야와 미셸 콴.

 

둘은 끝내 올림픽 우승의 숙원을 풀지 못했다.

 

늘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했던 캐나다 스케이터들도 항상 금메달 문턱에서 좌절해야 했다.

 

트리플 악셀을 동시대 남싱 중 가장 완벽하게 구사했던 브라이언 오서는 너무 막강했던 경쟁자들 때문에 2회 연속으로 금메달 코앞에서 좌절해야 했으며,

 

역사상 최초로 쿼드 점프를 착빙했던 '원조 토탈 패키지' 커트 브라우닝은 올림픽만 나가면 삽질을 하며, 2년 주기 올림픽이라는 절호의 기회조차 모두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또한 그들의 뒤를 이은 엘비스 스토이코 역시 러시아 남싱들의 전성기와 커리어가 겹쳐버리는 엄청난 불운 때문에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부상이 없을 경우 금메달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유리의 에이스' 다카하시 다이스케는 압도적인 실력에도 불구하고, 부상으로 인해 월드 우승조차 못하고 있다.

 

'쇼트의 여왕'이라 불렸던 사샤 코헨은 현역 시절에 신채점제와 관련된 신기록이란 신기록은 다 작성해 놓고도, 프리에서의 삽질로 월드 우승 한번을 못했다.

(코헨이 콴이나 슬루츠카야에 비해 한끗발 떨어지는 선수인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사라 휴즈보다는 훨씬 뛰어난 선수다.)

 

 

 

김연아 선수는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을까?

 

알렉세이 야구딘은 시니어 데뷔 이후 처음으로 출전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5위를 기록했다.

 

플루셴코 또한 시니어 데뷔 이후 첫 출전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5위를 기록했다.

(물론 당시 구채점제에서는 처음 출전한 선수한테 점수를 짜게 주는 풍토가 형성되어 있긴 했지만 말이다.)

 

한편, 김연아 선수는 데뷔하자마자 그랑프리 파이널을 우승했으며, 월드에서 3위를 기록했다.

 

김연아 선수는 미셸 콴보다는 야구딘과 플루셴코를 닮았다. 데뷔할 때나, 전성기 때나 약점이 뚜렷했던 콴에 비해,

 

야구딘, 플루셴코와 김연아는 단점으로 지적받는 부분이 있으면 차근차근 고쳐나간다.

 

그리고 이젠 그 발전이 쌓이고 쌓여, 편파판정조차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고 말았다.

 

데뷔 3년차. 김연아는 그 기간동안 월드 1회, 그랑프리 파이널 2회를 석권했다.

 

구채점제에 비해 점수가 더 구체적으로 들어나는 신채점제에서, 쇼트, 프리, 합계 모두 세계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경력을 쌓는 속도로 보면, 김연아 선수는 리핀스키나 크리스티 야마구치와 흡사한 속도를 보이고 있다.

 

이 기세라면 다음 시즌에는 야구딘 이래 최초로 그랑프리+월드+올림픽을 동시석권하는 기염을 토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김연아 선수의 우승이 장기적으로 피겨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그것은 야구딘과 옥사나 바이울의 사례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다.

 

크리스티 야마구치와 낸시 캐리건이 활동하던 당시 정점을 찍었던 미국 내의 피겨인기는 이후 점차적으로 하락했다.

 

야구딘과 옥사나 바이울은 국적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였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캐나다와 미국에서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야구딘은 캐나다에서 '양아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랑받았으며, 옥사나 바이울은 미국에서 거의 공주 취급을 받던 낸시 캐리건 못지않은 큰 인기를 구가했다.

 

물론 이 두 선수가 피겨인기의 하락세를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소한, 피겨에서 마음이 떠나있던 올드 팬들을 잠시 붙잡아두는 역할은 수행할 수 있었다.

 

김연아 선수 또한 마찬가지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아니, 범위를 캐나다에 한정한다면, 피겨 인기를 잠시동안이나마 다시 상승세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

 

코치가 브라이언 오서이기 때문이다.

 

오서는 '팀 캐나다'의 시작이었던 선수다.

 

그는 거의 10년 가까이 캐나다를 대표했으면서도, 늘 안타깝게 금메달을 놓쳤던 선수다.

 

브라이언 오서 이후, 팀 캐나다의 대표주자였던 커트 브라우닝과 엘비스 스토이코, 그리고 제프리 버틀은 모두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래서 캐나다 국민들은 물론이고, 미국 관계자들조차 오서에 대해서는 상당한 연민을 품고 있을 정도다.

 

이번 월드 해설에서도 미국 해설자가 '오서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정말 모든 것이 순리대로 돌아가는 셈이지요. 저는 그를 응원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 월드 준우승만 4번을 하고, 올림픽에서 은메달만 2개를 땄던 비운의 스타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것이 김연아 선수의 뛰어난 퍼포먼스와 맞물려, 김연아 선수에 대한 응원과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은퇴할 것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금메달을 딴다면, 올림픽 직후 열리는 투린 세계선수권을 끝으로 은퇴할 것이다.

 

확실하지는 않다. 아마 그럴 것이라고 추측만 하는 거다.

 

물론 나도 김연아 선수가 2014년까지 더 현역에 있어줬으면 하지만,

 

앞에서도 썼듯이 지난 30년간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도 다음 올림픽까지 현역에 있었던 선수는 카타리나 비트 한명뿐이다.

 

나머지는 모조리 은퇴했다.

 

피겨 관계자들이 김연아 선수의 남은 활동기간을 5년으로 잡는다고 해서, 김연아 선수가 은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피겨 관계자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김연아 선수의 속마음은 김연아 선수 본인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보면, 은퇴할 가능성이 높다.

 

월드에서도 이미 우승했고,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우승했기 때문이다.

 

'계속 남아서 월드 5~6회, 그랑프리 파이널 5~6회 우승하고, 올림픽 2번 연속으로 우승해서 역사적인 선수로 남아라!'

 

이런 응원을 하는 사람들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이건 너무도 잔인한 요구다.

 

운동선수의 일상은 너무나도 지루하고 힘들다.

 

쇼트, 프리를 합쳐서 6분 남짓한 시간, 한 시즌에 월드, 그랑프리 시리즈, 사대륙까지 합쳐서 많아야 5번의 퍼포먼스. 도합 30분 남짓한 시간을 위해,

 

1년을 오롯이 훈련에 바쳐야 한다.

 

만약 김연아 선수가 2014년까지 현역으로 남는다면, 김연아 선수의 나이는 스물 넷이다.

 

여성으로서 가장 젊음을 만끽할 수 있는 나이인 20대 초반을 고된 훈련과 절제된 생활 속에서 보내야 한다.

 

글쎄, 나는 김연아 선수가 국위선양을 해주는 것도 좋고, 명작 프로그램들을 많이 남겨주는 것도 좋지만,

 

일단은 김연아 선수 본인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만약 계속 현역에 남아서 더 화려한 커리어를 남기고 싶다면, 그것도 좋다. 아니, 오히려 팬의 한 사람으로써 더 감사한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은퇴하더라도, 아쉬워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줄 것이다.

 

피겨 인프라가 일천한 대한민국의 동계스포츠 팬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한겨울밤의 꿈을 선사해준 선수니까.

 

 

 

정말로 김연아 선수가 2010년에 밴쿠버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기를 바란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은 계속 컴페티션계에 남아서 선수생활을 계속해야 한다.

 

경쟁자로 불렸던 사람이 이미 금메달을 따고, 아이스쇼에 진출해서 인생을 즐기는 동안,

 

계속 4년 뒤를 바라보며 훈련에만 매진해야 한다. 선수생활 말년에 초라하게 전락한 미셸 콴과,

 

눈물 반, 땀 반으로 스케이팅을 했던 이리나 슬루츠카야,

 

그리고 아라카와에게 지기 싫어서 30살이 다되서까지 아마계에 남아있는 수구리 후미에를 보라.

 

이들은 '은퇴할 수 없었던' 선수들이다. 꿈을 이루지 못해 그 흔적을 쫓는 선수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난 이런 선수들보다는 일찌감치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보다 폭넓은 선택권을 가졌던 옥사나 바이울이나 사라 휴즈가 더 행복한 선수생활을 했다고 생각한다.

 

브라이언 오서도 이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8년, 무려 8년간 올림픽 금메달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오서가 아닌가.

 

김연아 선수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2010년에는 꼭 금메달을 안겨주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진심으로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을 기원하고 있을 테다.

 

김연아 선수가 '은퇴할 수 없는 선수' 가 아니라, '은퇴할 수 있는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경력? 수상? 그런 건 상관없다. 난 팬으로서 이 선수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감동은 충분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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